| 구분 | 전시코너 | 주요 전시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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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부 | 해공 선생의 발자취 |
ㅇ해공 신익희 선생 주요 약력 및 사진 연표 |
| 메인 전시 | 의회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하다 |
ㅇ제헌~제2대 국회의장, 제1~3대 국회의원 재임 시 기록 |
| 국회도서관을 태동시키다 |
ㅇ「국회도서실 설치에 관한 결의안」 의안 및 회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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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전시 |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다 |
ㅇ1919년 상해 망명 후 임시정부 국무원, 의정원 활동 기록 |
| 조국의 미래를 교육에서 찾다 |
ㅇ국민대학교 설립자 및 초대학장 재임 시절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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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최고 지도자를 꿈꾸다 |
ㅇ제3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지명 및 선거유세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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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공의 뜻을 기리다 |
ㅇ해공 선생 사망 이후 장의행사 및 추모·기념행사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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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전시 | 해공 선생, 철학과 사상을 말하다 |
ㅇ해공 선생의 평소 신념과 의지를 담은 어록 모음 |
| 해공의 휘호, 기록으로 남다 |
ㅇ해공 선생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유묵(遺墨)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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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소장 도서 |
ㅇ국회도서관에 소장 중인 신익희 선생 관련 주요 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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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 개관 63주년 기념 기획전 의회지도자 해공 신익희 선생,
국회도서관 기록으로 만나다
출처: (월간)국회도서관 2015년 4월호 Vol.424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니 남의 잘난 것도 인정하여야 하며,
나도 잘 살려니와 남도 잘 살아야겠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이다.”
위의 글귀는 평소 민주주의에 대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우리들 모두가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이것이 민주주의를 실행해 가는 데에 원동력이 되고 또한 토대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개개인의 사고(思考)가 모이고 쌓여서 오늘날 우리들의 잘 살아가는 길,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 이것이 다름 아닌 민주주의”라고 하였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바탕으로 의회제도의 확립에 공헌한 인물이다. 선생은 광복 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 제헌국회 후반기, 제2대 국회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환국 직후에 발족한 행정연구회를 통해 헌법초안을 마련함으로써 제헌헌법의 기틀을 구성하는데 이바지했다. 또한 전국적인 기반을 가진 야당의 창당과 민주투쟁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1. 제2대 국회의원 필함
2. 국회도서실 설치 결의안국회기록보존소에서는 국회도서관 개관 63주년을 맞아 소장기록물을 활용한 색다른 시도를 했다. 그것은 바로 해공 신익희 선생의 기록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참뜻을 되새기고 국회도서관 개관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전시는 해공 선생 개인의 삶과 행적을 바탕으로 하되 국회도서관과의 특별한 인연에 포커스를 둔 스토리텔링형 전시로 기획되었다. 또한 회의록·의안문서 등 문서자료 중심의 소장기록 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시각적인 전시자료를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나아가 국회기록정보 이외에 유관기관이 보유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전시에 활용함으로써 범 기관적인 융합형 전시를 꾀하였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이번 기획 전시에는 해공 신익희 선생의 삶의 궤적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사진, 문서, 박물류 등 약 100점의 기록이 전시되었다.
해공 신익희 선생 기획전시 소개
전시는 크게 메인전시, 주제전시, 특별전시로 구성된다. 먼저 메인전시에는 해공 선생의 제헌국회·제2대 국회의장 재임시절 기록과 1952년 국회도서실 설치 관련 기록이 배치되었다. 이 중 ‘제2대 국회의원 필함’은 제2대 국회의원들이 임기 종료 시 재임 기념으로 서명한 필함으로서 정 가운데 신익희 국회의장과 당시 국회도서실 설치를 발의한 윤택중 의원의 서명이 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국회도서실은 해공 선생의 제2대 국회의장 재임 시절인 1951년, 윤택중 의원 외 16인이「국회도서실 설치 결의안」을 발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결의안은 같은 해 9월 가결되었고, 1952년 2월 20일 신익희 국회의장을 비롯한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도서실 개관식이 거행됨으로써 오늘날의 국회도서관이 태동하였다. 이 ‘제2대 국회의원 필함’을 통해 우리는 제2대 국회의 역사와 더불어 해공 선생과 국회도서관의 특별한 인연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선생은 의원외교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53년 5월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우방 26개국을 순방하였는데, 메인 전시에서 당시 대관식에서 신익희 선생이 착용했던 코트와 모자를 전시했다. 이 때 대관식 참석을 위해 김포공항에서 출국하기 직전 신익희 선생의 모습도 ‘신익희 국회의장 영국 출발 전 기념촬영’사진으로 볼 수 있다.
3. 신익희 국회의장 영국 출발 전 기념촬영
4. 대한 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임원 기념사진메인 전시 다음으로 펼쳐지는 주제 전시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가로, 광복 후에는 교육자이자 계몽운동가로, 또 의회 지도자이자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정치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나라는 마땅히 완전 독립이어야 하고, 민족은 반드시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 사회는 어김없이 자유 평등하여야 한다.”
위 글귀는 해공 선생이 염원한 독립된 조국의 모습이다. 주제 전시「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다」는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해 1945년 환국할 때까지 26년을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던 선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임원 기념사진’은 신익희 선생과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임원으로 있었던 이들의 단체사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기 전 감회를 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기념 서명포’가 갖는 의미도 각별하다. 서명포 우측에는 선생이 쓴 ‘정성단결’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정성을 다하여 단결하자’는 뜻으로, 이를 통해 당시의 감회를 짐작해볼 수 있다.
5.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기념 서명표
6. 국민대학관 개교식 기념촬영선생은 “조국의 미래가 청년에게 달려있다”고 믿었던 교육자이자 계몽 운동가이기도 했다. 교육자로서의 이력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해공 선생이 지금의 국민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학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주제 전시「조국의 미래를 교육에서 찾다」에는 1947년 ‘국민대학관 개교식 기념촬영’ 등을 비롯한 교육 관련 기록을 전시했다. 국민대학관 개교식의 배경은 보인상업학교인데, 초창기 국민대학은 교사를 갖추지 못해 보인상업학교 건물 일부를 빌려 입학시험을 치르고 수업을 했다고 한다. 선생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글을 읽어서 나라 및 민족을 애호할 생각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며 교육 사업에 매진하였던 것이다.
7. 신익희 대통령 후보의 한강 백사장 연설
8. 제3대 대통령 선거 벽보
9. 해공 신익희 선생 국민장1956년, 선생은 민주당 제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국가 최고 지도자를 꿈꾼다. 이때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국민들의 적극적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 냈으며, 유세 때마다 수많은 관중을 동원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익희 대통령 후보의 한강 백사장 연설’, ‘제3대 대통령 선거 벽보’를 비롯한 당시 기록이 주제 전시「국가 최고 지도자를 꿈꾸다」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선생은 그 뜻을 채 펼치기 전, 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열차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주제 전시「해공의 뜻을 기리다」의 ‘해공 신익희 선생 국민장’ 사진에서 보듯 당시 국민장에는 40만 명의 대규모 인파가 운집했으며, “초목도 울고 백성은 목 놓아 통곡했다”고 한다. 선생의 고귀한 뜻을 기리려는 노력은 후대로 이어지고 있다.
10. 제헌제공 공재민국마지막으로 특별 전시에는 철학과 사상을 글로 남긴 “명필가” 해공 선생의 친필 휘호와 유묵용품을 전시했다. 휘호 중 ‘제헌제공 공재민국’은 “헌법을 제정한 여러분의 공은 대한민국에 있다”는 뜻으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헌법 기초에 공헌한 선생의 이력에 비추어,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라 할만하다. 우리는 이들 유묵작품을 통해 선생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얼과 혼을 접할 수 있다.
민주 의정의 뿌리를 내리고, 입법부의 초석을 놓아 기틀을 공고하게 마련한 선생의 업적은 우리 헌정사에 빛나는 위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가 우리의 독립운동사요, 건국사요, 국회사인 동시에 정당사인 해공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의 정신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월간)국회도서관 2015년 4월호 Vol.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