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국회 주요기록물 소개

국회 주요기록물 소개 보기

기록으로 임시의정원을 돌아보다(1) - 대만수집기록을 중심으로

작성일 2019-02-2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862
파일


기록으로 임시의정원을 돌아보다(1)

- 대만수집기록을 중심으로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6회 기념사진

앞줄 중앙에 안창호, 다음줄 맨 오른쪽이 백범 김구 (1919. 9. 17.) [출처: 백범 김구 사진자료집]

 

2019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1919. 4. 10.)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회도서관 국회기록보존소는 2018년 국내·외에 산재하고 있는 임시의정원 관련 기록물을 조사·발굴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국회의 뿌리를 찾고 의회민주주의의 역사적 가치와 참뜻을 널리 알리기 위한 주요 과업의 하나이다.


국회 주요기록물 소개에서는 3번에 걸쳐 대만, 일본, 미국을 중심으로 수집한 국외소재 임시의정원 관련 기록물을 게재할 예정이며, 이번 달에는 대만에서 수집한 기록물을 중심으로 소장기관과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수집 개요


국회기록보존소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인 중국 상해와 중경을 중심으로 수집 대상을 선정하기 위하여 전문가 간담회를 실시하였고 유관기관의 연구자들로부터 자문과 함께 국내외 문헌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역사기록물 뜻하는 당안을 보존제공하고 있는 중국 상해시 당안관, 중경시 당안관, 중국 제2역사당안관 및 상해도서관 등에는 임시의정원 관련 자료가 없으며, 자료 유무 또한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문헌을 통해 대만 소재 중국국민당 문화전파위원회(文化傳播委員會)’에 소속된 () 관련 기록물 등을 보존하고 있는 당사관(黨史館)에는 한국관련 자료가 다수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사관에는 한국관련 자료로 분류된 한국특종당안이 있으며 607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자료를 검토한 결과 임시의정원과 관련된 자료 32건을 색출하였으며 국내 문헌과의 중복 조사 및 연구자들의 최종 자문을 거쳐 임시의정원 관련 자료 18건을 수집하기로 결정하였다.


2. 주요 수집기관 및 기록물

 

1) 중국 국민당문화전파위원회 당사관


 기관 소개


193051남경(南京)에서 발족한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당사사료편찬위원회((黨史史料編纂委員會, 이하 당사회라 칭함) 여러 차례 소재지를 옮기고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다. 1937년 노구교(蘆溝橋)사변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8월 당사회 소장자료는 중경(重慶)으로 이전되었다.


종전 뒤인 194510월부터 194812월까지는 소장자료가 남경에 보관되었다. 국공내전의 형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장개석(蔣介石)은 모든 사료를 대만으로 이전하도록 지시하였다. 두 차례의 이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소장자료들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당사회는 1972년 중국 국민당중앙위원회 당사위원회(黨史委員會)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797월 대중(臺中)에서 대북(臺北) 근교로 이전하였다. 2000년 정권교체 후 당 기구 축소작업이 있게 되면서 당사회는 당사관으로 격하되어 당 중앙 문화전파위원회에 속하게 되었다.


 소장 기록물


대만 소재 중국국민당 문화전파위원회(文化傳播委員會) 당사관(黨史館)에는 국민당 당사 관련 사료(史料)인 국민당 연혁 기록물, 당무 회의 및 조직 기록물, 특종 기록물, 중요 인물, 도서 자료 등 300만 건 이상의 기록물을 보존연구하고 있다. 특히 중국국민당이 중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던 관계로 당사관에는 이 시기 생산된 한국관련 자료들이 적지 않다. 이들 자료는 한국특종당안으로 분류되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현재 소장자료는 온라인으로 목록 검색이 가능하고, 대부분의 기록물은 PDF로 구축되어 당사관 관내에서만 열람할 수 있으며 복사는 불가능하다.

 



◀ 중국 국민당문화전파위원회 사관 홈페이지


 주소

104台北市中山區八德路二段

232~2344

 

 홈페이지

http://archives.kmt.org.tw

 

 개관시간

, ,

오전 9:00-12:00

오후 14:00-17:00



 수집과정 및 결과


중국 국민당 문화전파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는 당사관에는 한국 관련 기록물을 ()16’으로 분류소장하고 있는데, 한국교민관련자료인 한교권(韓僑卷)’, 한국의회관련 자료인 한국의회정보권(韓國議會情報卷)’, 한국임시정부관련 자료인 한국임시정부권(韓國臨時政府卷)’ 등으로 분류하여 총 27607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기록보존소는 이 중 임시의정원 관련 기록물 18건에 대해 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당사관 내부 규정인 복사 불가 방침에 따라 부득이 하게 복제(조판) 방식으로 수집하였다

 

중국 국민당문화전파위원회 당사관에서 수집한 임시의정원 관련 기록물들은 1942년에서 1946년까지 중국 국민당에서 임시의정원의 동향을 조사하여 작성한 보고서로서, 우리나라 학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자료이다. 이 기록물들은 당시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양 정부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요 수집 기록물


※ 원본의 복사 및 촬영 불가 방침에 따라 복제(조판)한 이미지를 수록합니다이미지 또는 이미지 하단 숫자(원문 용량이 큰 경우)를 클릭하면 해당 기록물의 전체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번호

기록물

발행일

내용요약

1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통일국면 형성과 

수정헌법에 관하여[關於韓國臨時議政院統一局面之形成與修改憲法]


 

[1] [2]


1942.12. 11.

19421025일 개막하여 1119일 폐막한 한국임시의정원 제34차 회의의 성과에 대한 시평 성격의 글임.

1.군대 특별선거구 설치, 2.임시정부소재지 특별선 거구 설치

3. 보통선거구(미주와 소 련 영토 등지) 설치를 위한 선거법 수정 결의 를 임시의정원 회의의 성과로 평가함.

2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미국으로 옮기고자 하는 내용

[韓國臨時政府擬遷往美國]


 


1942.12. 26.

한국임시의정원은 제34차 회의 비밀회의를 열고 중국 군사당국이 일방적으로 광복군활동준승(光復軍活動準繩)을 준수하도록 한국광복군에 요구한 것을 성토하였음. 이 과정에서 만일 중국 당국이 행동준승을 철폐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미국으로 임시정부를 옮기자는 의견까지 제기되었음

3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논쟁한 내용

[韓國臨時政府國務會議爭辯之內容]


 


1943. 5. 3.

외교부정보사에서 작성하여 국민당비서장 오철성(吳鐵城)에게 제출한 정보보고임. 19434월 초 한국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는 각 부 신임차장을 결정한 외에 ‘당파외교청산, ‘1백만원 차관안처리문제 등 두 쟁점을 두고 쟁론이 있었음. 본 보고서는 쟁점에 대한 각 방면의 의견과 협의과정 등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음

4


임시의정원 의장 홍진이 

국민당 중앙비서처에 보낸 편지[洪震致中秘處函]


 


1943. 7. 25.

국회의장 홍진이 병상에 있어 국민당총재 장개석의 초대에 응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전하는 편지임.

5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현재 상황에 대한 조사

[韓國臨時政府現狀之調査]


 


1943. 10. 12.

外交部情報司(외교부정보사)에서 작성한 한국임시정부의 최근상황에 관한 조사보고서임. 전반부는 임시정부의 역사, 임시정부 성립의 법률근거, 임시정부 각 부 부장명단,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각 당파의 형세 등 일반상황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음.

6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논쟁하고 있는 쟁점과 의견

[韓國臨時議政院中爭執之點及意見]


 


1943. 12. 14.

임시의정원이 오랫동안 파행상태를 면치 못하여 개회가 무기한 연기되자 중국국민당 방면에서 한국 각 당파 영수들을 만나 임시의정원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 작성한 보고서임

7


대한민국 임시헌장[大韓民國臨時憲章]


 


1944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장 총강 ~ 762조까지의 中文 번역문

8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가 

교착상태로 빠져 들어가게 된 경과

[韓國臨時議政院會議陷入局之經過]


 



1944. 2. 26.

한국임시의정원이 1943109일 제28차 회의를 끝으로 19442월 초까지 4개월 동안 열리지 못하고 무기 연기된 원인에 대한 중국국민당 방면의 경과조사 보고서임

9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상황에 대한 

간략한 보고

[韓國議會情形簡報]


 


1944. 4. 21.

1944420일 개최된 의정원 임시회의에서 헌법 제1장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져 국무위원을 14명으로 증원, 주석, 부주석 각 1, 정부 각 부 부장은 주석이 국무회의에 상정하여 통과되면 임명하기로 결정할 사항 등을 정리한 보고서임.

10


반추축국(反樞軸國) 전쟁에서 한국의 임무

[反軸心戰爭中韓國的任務]


[1] [2]


1944. 6. 10.

1944610일 한국임시정부외교부에서 발표한 비망록(중문, 영문). 이 비망록은 속히 세계대전을 끝내고, 전후 세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한국에 일정한 임무를 맡기고,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세계에 호소하는 입장에서 작성되었음. 한국독립운동계의 현재 상황과 장래 희망에 대해 소상하게 정리하여 밝히고 있음

11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장 조완구가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비서장 오철성 등에게 

보낸 편지 [趙琬九致吳鐵城等函]


 


1944. 8. 30.

한국임시정부내무부장 조완구(趙琬九)가 병으로 인해 초대에 응하지 못하게 되어 중국 참모총장 하응흠(何應欽),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비서장 오철성(吳鐵城), 중앙집행위원회조직부장 주가화(朱家화)에게 보낸 편지임

12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처에서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비서처에 보낸 편지

[大韓民國臨時政府秘書處致中秘處函]


 


1944. 9. 19.

이 문건은 중국이 임시정부에 제공하던 경제원조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관계기관의 왕래문건임. 주요 내용은

1. 물가상승으로 인해 추 가 부담해야 할 쌀 구 입비 190,760원의 감 면을 요청하는 임시정 부의 공문

2. 매달 쌀 80석 무상제 공을 요청하는 임시정 부의 공문, 이에 대한 국민당과 양식부 방면 의 회신 등으로, 국민 당총재 장개석(蔣介 石)의 재가를 얻어 매 달 쌀 80석을 한국임 시정부에 무상제공하 기로하였음을 알림.

13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결의안 원문

[大韓民國臨時議政院決議案原文]


 


1944

1944128일 개최된 임시의정원 제35차 회의에서 신임 국무위원 취임 후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평등호혜의 원칙에 입각하여 중국정부에 한국광복군 9항행동준승(九項行動準繩)을 대체할 신협약체결을 요구하도록 결의하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보고서임.

14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김원봉[김약산]이

인도에 공작대를 파견하고 한국 국내에 들어가

공작을 수행할 것을 요청한 문제

[韓國臨時政府軍務部長金若山請求派印

工作隊及韓國國內工作問題]


  


1945. 1.

본인의 결혼식 관계로 직접 나서지 못하고 한지성(韓志成)을 대신 보낼 것이니 한국광복군 공작대원의 인도 파견과 국내(한국)활동 문제에 대한 협의 시 편의제공을 청하며 김약산이 중앙집행위원회 정개민(鄭介民)청장, 서은회(徐恩曾)대리국장 등에게 보낸 편지, 이에 대한 두 사람의 후속조치 등 관련문건으로 구성되어 있음.

15

대한민국 임시의정회 각 당파 간 투쟁 상황

[韓國臨時議政會各黨派鬪爭情形]


 

1945. 5. 12.

군사위원회위원장실에서 국민당비서장 오철성에게 보낸 한국임시의회 각 당파 투쟁상황에 관한 정보임. 이 문건에 따르면 조선민족혁명당 방면에서 여러 차례 한국독립당에 해외한국독립운동자대회 개최, 임시정부를 개편하여 민혁당 몫 국무위원을 2명에서 4명으로 늘리는 대신 독립당 몫은 8석에서 4석으로 줄이고 미국과 화북(華北)의 조선독립동맹에 2석을 배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독립당이 이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임시의회 파행의 근본쟁점이라고 분석하고 있음. 

16


대한민국 임시의정회 개회 상황

[韓國臨時議政會開會情形]


 


1945. 5. 27.

군사위원회위원장실에서 국민당비서장 오철성에게 보낸 한국임시의회 개회상황에 관한 정보보고서임. 3주간의 회기를 마치고 폐회한 한국임시의정회는 회의에 참가한 5개 당파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조선민족혁명당에서 제출한 국무위원 석차 재분배, 해외 독립운동자 대표대회 개최, 임시정부 확대 등 현안에 대해 원만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였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음.

17


대한민국 임시정부 동북대표부의 정황 보고

[韓國臨時政府東北代表部情報]


 


1946. 2. 23.

해방 후 한국임시정부는 환국하기 전 중국 내 한국교포관리 등 사무를 담당할 주화대표단을 조직, 중국정부의 비준을 받았음. 이 문건은 당시한국 교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던 동북지역에 파견되었던 주화대표단 동북대표부에서 작성한 현지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상황에 관한 보고서임

18


대한민국 임시의정원법을 발췌한 중문 번역

[韓國臨時議政院院法摘譯]


 


-

개회기 내 휴회기한, 투표방식 등 한국임시의정원원법 중 주요 조항의 中文 번역문임



2)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당안관


기관소개


중앙연구원은 19286월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항일 전쟁이 발발하기 전 중앙연구원 산하에는 남경과 상해 두 곳에서 10개의 연구소가 설립되어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산하 연구소는 곤명, 계림, 중경 등지로 옮겨 다니다 종전 후 남경과 상해로 돌아왔다. 다시 1949년 대만으로 옮겼고, 1954년 남항(南港)에 자리를 잡았다. 중화민국 학술연구의 최고기관인 중앙연구원은 인문 및 과학연구, 학술연구의 지도연락 및 장려, 고급학술인재의 배양이라는 임무를 띠고 있다.



소장 기록물


1955년에 당안자료의 수집, 국내외 학술도서 구입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19654월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외교부와 경제부로부터 진귀한 당안 자료들을 이관 받았고, 근대사 연구 산하 원사자료실(院史資料室)이 당안관에 합병된 19993월부터는 개인 및 단체 기증 자료가 당안관의 또 다른 중요 소장품으로 자리하였다


 ◀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홈페


주소

台北市 11529 南港區?究院路二段128

 

홈페이지

http://archives.sinica.edu.tw

 

개관시간

8:30 ~ 17:30

국경일 및 공휴일 휴관



수집과정 및 결과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당안관에는 한국독립운동’ 관련 기록물 약 200건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기록물은 김구,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료이다.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도서관에서 임시의정원 소식을 게재한 중국신문 등을 조사한 결과해방일보(解放日報),중경대공보(重慶大公報)의 기사 원본 4건을 복사·수집하였다. 이 중해방일보(解放日報)에 실린 기사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기록물이다.


주요 수집 기록물


수록지 및 기사명

발행일

내용요약

1


解放日報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34차 의회 개최 보고

[韓國臨時議政院在투召開第三十四屆議會]


 

1942. 11. 21.

(중앙사 중경발 20일 전문)

한국 임시의정원은 지난달 25일 아국의 전시수도에서 제34차 의회를 소집함. 이번 회의에는 의원 46명이 출석하였음. 회의에 출석한 현임 임시정부주석, 국무위원, 광복군부사령 및 각 당파 영도인들은 현임 임시정부고문 홍진을 의장으로 추대하여 각 당파 인사들이 대거 참가하여 단결합작의 뜻을 표시하였고, 장래의 계획을 논의하고 19일 폐막하였음. 중요 의결안은 ()임시약헌 수정, 국체

(國體) 공고안. ()전체 의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김구 주석의 연임을 결정 등 총 ()의 내용을 게재함

2


重慶)大公報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개회되어 김구가 주석에 연임됨[韓國臨時議政院開會金九連任主席]


 

1944. 4. 26.

중앙사 소식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36차 임시회의가 20일 소집되어 24일 폐회함. 이번 회의에서는 약헌 수정문제가 주 의제로 다루어짐. 회의에서 결의된 요점은 다음과 같음

. 종래 사용하던 임시약 헌은 임시헌장으로 개칭함.

. 정부주석의 권한을 제 고토록 함.

. 정부부주석 1인을 증 설함.

. 국무위원회의 지위를 제고하고 그 아래 따로 행정 각 부를 둠. 각 부의 부장은 비국무위원 가운데서 도 선임할 수 있음.

아울러 임시의정원은 24일 신헌장에 의거 정부주석과 부주석 및 국무위원을 개선하였음. 그 결과 김구가 주석에 당선(연임)되었고, 김규식이 부주석에 피선 등의 소식을 게재함.

3


(重慶)大公報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폐막을 축하하는 전보

[韓臨時議會閉幕中央致電申賀]


 

1944. 5. 4.

중앙사 소식 : 중국 국민당중앙집행위원회는 3일 임시의정원 회의의 원만한 폐막을 축하하는 전보를 발송함. 전보 원문의 내용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위께 : 귀국 임시의정원 제36차 임시의회에서 정부주석과 국무위원을 선출하는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원만한 폐막을 이루었다는 소식 접하였습니다. 진정으로 단결하고 함께 분투하여 귀국의 독립운동이 날로 빛을 발하기를 축원합니다. 밝은 앞날을 전망하며, 함께 경하할 일이 아닐 수 없어 특별히 전보를 통해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등을 게재함

4


(重慶)大公報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식 소식 게재

[韓國議政院昨擧行開院式]


 


1945. 4. 12.

본보 소식 : 한국 임시의정원 제38차 의정회가 어제 오전 9시 한국 임시정부 대강당에서 개원식을 거행하였음. 개원식에는 한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 의정원 의장 홍진, 부의장 최동오 등 50여 명이 참석. 의장 홍진이 회의주석 자격으로 행한 개회사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음 :

우리는 반드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노력하고 단결하여 일구(日寇)를 소멸시키고 조국광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등의 내용을 게재함

중경대공보(重慶大公報)’는 독립기념관에 마이크로필름으로 소장되어 있음.


解放日報(해방일보)

 

1941516일 연안(延安)에서 창간함. 중국 인민해방군이 연안에서 철수하면서 1947327일 창간한 연안시기와 1949528일에 상해에서 창간한 상해시기로 나누어짐. 해방일보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간행된 선전기관 일간지로서 중국 공산당의 노선과 정책을 홍보하는 것이 목적임.

 

大公報(대공보)

 

190267일 텐진(天津)에서 최초 창간함. 이후 천진판, 상해판, 중경판 등을 창간하였으며, 국민당과 장개석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반공적 성향을 보임. 임시의정원 및 중한문화협회(中韓文化協會) 등 한국관련 기관 소식이 다수 수록됨.


지금까지 소개한 기록물들은 20194월 국회 기록보존소에서 발간 예정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 국외 주요자료 해제집 일본·대만(가칭)편에 수록될 기록물의 일부이며, 각 기록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해제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정보원

중국 국민당 문화전파위원회 당사관 홈페이지 http://archives.kmt.org.tw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홈페이지 http://archives.sinica.edu.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