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임시의정원 아카이브
  • 개관

「임시의정원 디지털 아카이브」는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 전신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관련 기록물을 수집하여 제공합니다.

  • 임시의정원이란?

    임시의정원이란?
  • 임시의정원의 역사적 의의

    임시의정원의 역사적 의의
  • 임시의정원의 기능과 성격

    임시의정원의 기능과 성격

    1919년 4월 25일 개최한 임시의정원 제3회 회의에서「임시의정원법」이 제정되었다. 「임시의정원법」이 제정된 후, 선거를 통해 출신 지역별로 임시의정원 의원 총 36명이 선출되었다.

    1919년 7월 7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된 제5회 회의에서 전원위원회,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상임위원회는 각 부처 소관에 따라 구성되어 소관부처의 안건을 심사하는 기구로, 모두 8개의 분과를 두었다. 임시의정원이 다룬 안건이나 내용을 담은 속기록이나 회의록을 보면, 대정부 질문과 정부 담당자에 대한 책임 추궁, 의안 발의와 토론, 심의와 의결 과정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의회 운영은 뒷날 국회의 바탕이 되었다. 임시의정원이 의회로서 갖는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시의정원은 권한과 기능에 있어서 의회가 임시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을 선출하는 권한을 가졌고, 탄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원내각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1925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둘째, 임시의정원은 예산과 결산의 권한을 가졌다. 초기에는 임시정부가 직접 국내 행정의 일부를 장악하면서 재정을 마련하였고, 국내와 동포들의 성금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었다. 다만 시기에 따라서는 그 권한과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셋째, 조약체결과 선전포고 등을 결의하였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소식을 듣자마자 ‘대일선전포고(1941. 12. 10.)’에 이어, ‘대독선전포고(1945. 2. 28.)'까지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시의정원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독립운동의 구심체인 임시정부를 유지하면서 독립운동의 방법과 전략을 논의하는 초입법적인 성격을 가졌다.

    둘째, 1930년 이전까지 임시의정원은 정당대표가 아닌 독립운동가들의 집합체로서 주로 출신지역별로 결집하는 성향을 보였다. 1930년 1월 한국독립당이라는 정당이 들어서는데 그나마 유일정당이었다. 그러다 1935년 이후 복수정당이 결성되면서 여당과 야당이 존재하는 다당제가 되었고, 1942년에는 충칭에서 좌우세력이 모두 합류하여 통일의회로 발전하였다.

    셋째, 임시의정원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차별이 없는 평등원칙을 세우고 여성이 의원직을 가질 수 있게 하여, 근대 시민사회의 면모를 갖추었다. 실제로 7인의 여성의원이 참여했는데 1922년 김마리아가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2년 충칭에서도 방순희가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외에 최혜순, 양한나, 김효숙, 신정완, 지경희 의원이 있었다.

    임시의정원 이전/다음 글 상세 정보로 이동하는 목록입니다.
    이전글 임시의정원의 역사적 의의
    다음글 『대한민국 임시현장』의 변천과정
  •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변천과정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변천과정
  • 임시의정원을 이끈 인물들

    임시의정원을 이끈 인물들
  • 임시의정원 디지털 아카이브 안내

    임시의정원 디지털 아카이브 안내